[경제역사] 중동 혼란의 불씨 이중선언

 

요즘 중동에서 많은 분쟁이 생겨나고 있는데 트럼프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과 유네스코 탈퇴, 연이은 '골란공원 이스라엘 주권' 선언 등으로 팔레스타인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랍의 역사를 간단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아랍의 시작,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을 공략하여 동로마 제국을 점령하는데 이때 동로마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정하고 이후 이스탄불로 대체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는 슐레만 1세때입니다. 그는 동쪽으로 이란을 서쪽으로 이집트와 북부 아프리카를 점령한 후 동서양을 잇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두고 모든 아랍권과 서아시아 그리고 서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대제국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지역을 영토로 확장하였고 동서양을 잇는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대제국의 여러 부족을 포용할 수 있었던 정책 덕분이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오스만 제국은 600년 이상 이어져왔습니다.

 

앞선 포스팅의 '영국의 근대 경제대국이 되다' 의 글에서 보듯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때 동양의 문물이 서양으로 무역을 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서구 국가들에게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서구 국가들과 십자군 전쟁이나 동로마 제국의 침략 후 멸망 등으로 대립관계를 가지게 되어 좋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서구의 상인들에게 주요 물품들을 비싸게 판매하여 서구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여 아시아와 직접 교역하기 위해 항로 개척에 나섰는데 이것이 대항해 시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600년 이상 이어져 오던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되고 오스만 제국에 속해있던 여러 부족들은 독립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분쟁을 겪는 씨앗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이중선언

 

오스만 제국이 여러나라로 해제한 데는 영국의 역할이 컸습니다. 바로 "이중 선언"입니다. 

영국이 프랑스, 아랍 사회, 유대인 총 3개국에 서로 다른 제안을 했는데 "맥마흔 선언" 과 "벨푸어 선언" 이 이중외교 선언인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중동 전체를 영국과 프랑스 두 국가를 분할하자는 제안을 했고 동맹국이자 강국이었던 프랑스의 비위를 맞춥니다. 

 

맥마흔 선언은 영국과 아랍사회의 외교선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제국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동맹하여 유럽연합국과 싸울 때 오스만 제국에 소속되어 있는 아랍사회에 외교를 합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중동 전체에서 오스만 제국을 대신할 아랍왕국을 수립할 때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제안합니다. 오스만 제국에 속해있는 여러 아랍 부족의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벨푸어 선언은 영국과 유대인의 외교선언입니다.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 자신의 국가 재건을 염원하고 있는데 영국이 그곳에 '내셔널 홈 건설'을 해주겠다고 선언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도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 유대인 거주지를 형성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유대인은 각지에 흩어져 살며 금융업에 종사를 했는데 그중 유명한 금융가인 로스차일드 가문도 18세기 독일에서 발흥한 유대인 은행가 가문이었습니다.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가 유대인 사회를 대표하는 로스차일드 가문 보낸 편지에서 기인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데 필요한 유대인의 재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영국의  이 같은 삼중 외교로 아랍세계와 유대인 사회의 대립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아랍과 유대인의 대립 - 중동전쟁

 

벨푸어 선언으로 각지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시기에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75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65만 명 정도가 아랍인이고 

5만명 정도가 유대인, 그 외 소수민족이었습니다. 1931년 ~ 1935년 사이에 유대인이 15만 명이 이주를 해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땅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무섭게 이주해 들어오는 유대인과 갈등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위임통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과 아랍인의 대립이 한계에 다다르자 영국은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포기하게 됩니다. 국제연맹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시키는 안을 채택하는데 유대인은 수용하여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게 됩니다. 물론 아랍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아랍국가들이 무력적 항쟁을 벌이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이 80% 차지하게 되고 아랍인들은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팔레스타인 지방을 두고 두 민족이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게 된 것입니다. 

 

마무리

 

제2의 중동전쟁, 제 3의 중동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난민이 되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출범이 되어 그들의 독립국가를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여 두 민족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더더욱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