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역사] 영국은 근대 경제대국이 되다.

 

영국이라면 다른 나라보다 빨리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 패권을 거머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에 신항로 개척에 뒤쳐지던 영국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에 '거국적인 해적 행위'로

그들의 식민지를 가로채 자원을 확보하였습니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국이 패권국가가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해적에서 강력한 해군력을 갖춘 대영제국의 탄생 

 

 

당시 유럽의 최강 제국은 스페인이었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군대'라는 뜻의 '아르마다'라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있었습니다. 신대륙에서 금을 싹쓸이하고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에서 후추, 육두구, 샤프란 등 향신료를 가져와 부를 쌓았습니다. 참고로 후추는 유럽에서 동일한 무게의 금과 거래가 될 정도로 잘 팔렸습니다. 주요 식민지와 항로는 스페인을 비롯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대륙에 자리한 국가들이 먼저 선점하였습니다. 

 

이때 영국은 유럽의 변방국으로 가난한 나라였고 바다로 나온 영국은 해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해적왕 드레이크가 등장하였습니다. 해적을 눈여겨보던 여왕은 해적왕 드레이크에게 영국의 배를 선사하며 국가사업으로 해적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드레이크는 해적질로 금·은·향료 등을 싣고 귀항하여 영국에 60만 파운드를 주고 그 절반의 30만 파운드를 여왕에게 주었습니다. 영국 여왕은 모든 채무를 변제하고 나머지는 지중해 무역에 투자하였습니다. 드레이크를 해군 제독의 자리를 주고 해적에서 강력한 해군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렇게 7대양을 지배한 대영제국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금융 제도를 갖추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은 조직이나 제도의 규모를 늘리고 합리화하는데 탁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세''은행'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중세에는 국왕의 권력이 꽤 강했던 시기였는데 무적함대를 이끌던 스페인의 국왕은 대항해 시대에 이 국가와 저 국가와 전쟁을 벌였던 탓에 재정악화로 해군력이 약해져 영국에게 패했습니다. 

 

영국은 일찍이 근대적인 은행을 설립하여 재정 및 금융을 안정시켰습니다. 

 

1693년 국채에 관한 법률이 세계 최초로 제정되었습니다. 

 

1964년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영국 정부의 국채를 끌어안는 대신 같은 액수의 은행권(지폐)을 발행할 권리를 잉글랜드 은행이 가진 것이었습니다. 즉, 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기 위해 세워진 은행입니다. 

영국 정부는 낮은 금리로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 군사력을 키워 영국은 전쟁에 강한 국가로 변모해갔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이 곧 경제력이었습니다. 

 

영국은 파운드의 기축통화

 

 

19c 후반 영국의 파운드가 기축통화가 되었고 세계 최초로 금융제국이 탄생하였습니다.

 

1816년 금본위제를 채택하였습니다. 금본위제란 금 자체 또는 금을 화폐로 교환해주도록 만든 금 태환권을 통화로 유통하는 것입니다. 

 

1821년 전 세계를 상대로 파운드와 금의 자유로운 교환을 보증하였습니다. 국가의 금 보유량이 고스란히 통화량에 반영되었습니다. 

 

1822~1913년 전까지 영국의 물가지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이 무렵 영국 파운드가 국제무역에서의 기축통화로 등극하였습니다. 영국의 파운드가 기축통화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국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었으며 전 세계 금의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덕분에 통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세계 최대 무역국가였고 19c~20c초에 걸쳐 영국은 세계 무역의 20% 안팎을 단독으로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국제 무역 주요 상품은 면제품이었습니다.  전 세계 면제품 거래를 도맡았고 원료인 목화는 이집트, 인도, 미국에서 영국으로 집결하였습니다. 목화를 제품화한 면제품의 막대한 거래를 "시티오브런던"에서 진두지휘했습니다. 

영국은 외환·투자·보험 등을 포함하는 금융 업무의 대부분은 "시티오브런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모은 자금으로 여러 국가에 투자를 했는데 영국은 미국의 국채를 많이 매입하여 영국이 미국의 주요 채권국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대전으로 영국에 경제위기가 닥칩니다. 영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은 섬유제품이며 20c초 세계 무역에서 섬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20%인데 그 절반이 영국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해상이 봉쇄되어 무역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영국은 수출입이 불가능해지면 대영제국은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 영국은 섬유제품이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데 수출할 수가 없어 이러한 시장 점유율 공백을 일본이 차지하였고 전쟁 동안 일본은 수출량을 세 배로 급격히 증가시켰는데 주된 수출품이 섬유제품이었습니다. 

 

또한 영국은 원료나 식량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했는데 해상 봉쇄로 국내로 들여올수가 없어 국민들이 굶어 죽을 위험에 놓였습니다. 다행히 미국이 참전하고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국이 영국의 압도적인 채권국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미국은 영국에게 위협이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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