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버블의 발생과 붕괴 후

 

일본경제 버블의 발생과 붕괴 후

 

"부동산 버블의 발생원인과 붕괴 이후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경제 버블의 발생과 붕괴 후 경제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은 일본경제를 반면교사를 삼아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일본의 경제가 10년이상의 경기침체기를 가지게 된 이유가 일본정부의 실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경제 버블의 발생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이 위기감을 느껴 일본 경제가 살아나도록 많은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 시기에 미국을 넘보는 세계 경제 강대국이었던 나라였다. 일본이 고정환율 덕분에 환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이라는 거대 수요국에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수출하여 막대한 흑자를 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일무역관계에서 계속적으로 무역적자가 늘어났다. 

 

1.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9월 G5 와 함께 플라자 호텔에서 "플라자 합의"를 한다. 환율을 조정하여 대일무역적자를 해결하려고 한 것인데  무역적자 증가는 더이상 없었지만 그렇다고 감소하지도 않았다. 이에 미국은 누적된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일본의 내수를 키워 미국 물건을 많이 사들이게 하면 미국의 과도한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서독과 일본 등의 나라를 프랑스 파리로 초대하여 "루브르합의"를 한다. 루브르 합의에서 일본에 금리인하와 내수경기를 부양하도록 하였고 아래와 같이 실행하였다. 

 

  1. 일본의 재할인율(당시 기준금리)을 0.5% 인하.
  2. 내수경기부양 대책으로 부동산담보대출 등을 완화시킴.
  3. 1980년대 중후반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

 

1980년대 중후반 국제유가까지 폭락하여 일본의 내수경기가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컸다.  그리고 부동산담보대출 완화로 일본의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 Loan To Value ratio) 이 120%에 달했다. 이는 1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대출받으러 가면 1억 2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부동산 투자가 급상승할 수 밖에 없었다. 내수부양정책으로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거의 극에 달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제가 버블상태가 된 것이라면 기업들은 어떻게 했을까? 

 

  1. 개인이나 기업들은 부동산 투기로 과열현상.
  2. 엔화절상 및 국제 유가 하락으로 수입증가되어 소비시장 과열.

 

일본의 금리인하로 은행에서는 대출받는 개인과 기업이 늘어나게 된다. 기업들 또한 R&D 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부동산에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엔화의 평가절상으로 수입이 증가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물건을 마구 사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의 내수시장이 커지게 되면서 미국의 물건을 많이 수입을 해주니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지나면서 대일무역적자는 크게 감소하게 된다. 

 

미국은 일본과 플라자합의로 환율조정을, 루브르합의로 금리인상과 내수부양으로 미국은 성공을 거뒀다. 

 

2. 블랙먼데이

플라자합의나 루브르합의를 한 후 글로벌 시장에서는 공급할려는 국가는 많으나 살려고 하는 수요국가는 많지 않아서 수요부족 시장이 형성되었다. 글로벌 거대 수요국인 미국은 그 시장을 좁혀가고 있었고 루브르합의를 통해 일본과 서독이 수요국으로써 동참하게 되었다.

 

 

 

플라자 합의를 한 서독도 이에 포함되었다. 서독의 중앙은행은 자산시장의 과열 양상과 내수 과열이 나타나자 금리 인상 카드를 쓸려고 한다. 이에 일본 또한 자산 버블 현상이 심화되어 미국의 눈치를 보며 금리인상카드를 내놓으려한다. 세계 금융시장은 서독과 일본이 루브르합의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려고 하자  금융가에서 공포감이 조성이 된다. 결국 1987년 10월 19일 미국의 다우존수지수는 단하루만에 주식이 22% 로 급락하게 된다. 이때를 "블랙먼데이" 라고 부른다.

주식시장이 곤두박질 치는 바람에 일본은 금리인상을 포기하고 금리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독과 미국은 금리를 인하시킨다. 

 

금리인상을 위한 잃어버린 명분

 

일본의 지속적인 엔화절상으로 수입물가가 낮아지니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격이 상승하는데도 , 그리고 경기까지 나아지는데도 물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일본의 은행이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버블을 잡으려면 금리인상을 하는 것이 맞지만 블랙 먼데이로 인한 경기침체의 부담이 상당히 큰데다 물가도 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렇게 일본의 버블을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일본버블의 붕괴 후

1989년 일본 자산 시장의 버블은 거의 정점에 달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당시 40,000포이트 수준에 육박하면서 상승세를 나타냈다. 1989년초부터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대미무역흑자도 해결이 되어가고 해서 루브르 합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1.  과도한 금리인상

 

버블이 워낙 심해진 만큼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일본 중앙은행(BOJ)는 1989년 초 2.5%에 불과하던 일본 기준금리가 1990년 중반에 갑자기 6%까지 인상시켰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일본의 주요 대출금리는 빠르게 인상되었고, 120%에 달했던 주택담보대출(LTV) 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대출이자부담으로 매물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너도나도 부동산에 내놓으니 주택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디폴트(Default) 선언을 하게 되고 일본 은행들이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행들의 부실이 커지면서 대출해주는데 신중해질수밖에 없었다. 대출이자부담을 가진 개인들 또한 위기였다. 부채 부담으로 소비도 극도로 위축되어 수요 감소로 물가가 하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디플레이션이 발생" 하게 된 것이다. 

 

2. 디플레이션 진입을 방조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소비자들은 물가가 지금보다 더 낮아질거라 생각해서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되어 있다. 그 결과 디플레이션의 장기화·만성화가 일어났다.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부채부담을 키우면서 국가의 소비 전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을 때는 금리 인상 등을 과감히 포기하더라도 자산 가격의 급락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본 은행이 알았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은행들의 부실이 심각하면 정부나 중앙은행에서 여러 금융 프로그램 등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는데 일본은 은행 부실 살리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국 일본 정부는 재정적자만 커져가고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3. 실효성이 낮은 경기 부양책

정부의 인프라 투자 지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정부 재정적자는 커져갔다. 실제 실질적인 생산성이나 효율성의 개선이 크게 나아지지도 않았다. 실효성이 낮은 인프라 투자지출을 늘려 부실한 은행의 채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은행들은 대규모 부실을 계속 떠안고 가고 정상적인 자금 중개개능을 수행하지 못한 지 수년째이다. 이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찾아와 1997년 되면서 은행들의 부실을 좌시할 수 없어 일본 당국은 은행에 대한 과감한 공적 자금 투입을 하고 부실 채권 처리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은행은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이다. 은행이 일본 전체 경제를 움직이는데 혈액공급을 할 수 없게 만든 일본정부는 1990년 초 금리인상으로 버블이 붕괴되면서 불거진 은행의 부실대출 문제를 1997년이 되어서야 해결하겠다고 나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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